어미의 산, 지리산 자락을 따라, 1박 2일 남도 여행 (1부)

재미가 톡톡! 2016.11.30 18:00

 

바다를 끼지 않는 길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나무와 숲에 기대 장엄한 밀물의 감흥 따윈 없을 거란 결론이었다. 성급한 판단이었나. 담양과 구례, 함양으로 연결된 남도의 안쪽은 가을이 다리를 놓고, 겨울이 마중 오는 계절의 급물살이었다. 지리산이 포옹하는 드라이브. 참 포족했다.

 

~담양 소쇄원

  

“가야 할 가치가 있는 곳에 닿는 지름길은 없다.” – 비버리 실즈(미국 오페라 가수)

 

 

 

차는 엉뚱하게 담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소쇄원이다.

지리산 근방이라고 하기엔 80km도 족히 넘는 곳이었다.

언젠가 사는 게 안쓰럽다고 여길 때 찾았던 곳이다. 그해 여름의 소쇄원은 소리로 기억되었다.

광풍각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대숲이 마음을 빗어 내리듯 청명하게 요동쳤다. 겨울의 문턱, 다시 소쇄원에 섰다.

  

 

소쇄원은 1530년경 은둔한 조선시대 선비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별서정원이다.

풀이하자면, ‘맑고 깨끗한 정원이다.

당대 가사 문학의 대가가 여기 모두 모였다. 정철, 송시열, 송순 등 풍류와 사유엔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사랑한 건 지금도 있다.

대숲을 시작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의 고목과 계곡을 눈 밑에 둔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등 팔작지붕집까지.

세파에 높은 벽을 치는 자연 한가운데에서, 여행객은맑고 깨끗한자신과 마주한다.

늘 그랬듯 사랑채 같은 광풍각에는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월당의 48(양산보의 사돈인 김인후의 시) 중 제44영인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映壑丹楓)’을 그렸을 것만 같은 자리다.

오색 고목이 눈동자를 물들이고, 바위 사이로 낙엽을 실은 계곡 소리에

대숲이 메아리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계절을 붙든 여러 이파리가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소쇄원의 가을은 계절이 변하는 소리를 눈으로 보여준다.

마음은 비워지고, 그 자리를 채울 여행에 나설 시간이 되었다.

  

개관 오전 9~오후 7     문의 061-382-1071, www.soswaewon.co.kr

 

 


 

 

 담양 소쇄원~구례 화엄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당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면.” – 오르한 파묵(터키의 작가)

 

 

 

화엄사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은 섬진강에 편향되게 맞췄다.

호남고속도로로부터 곡성으로 진입해 17번 국도를 따라 섬진강 물줄기가 안배하는 길이다.

3개의 도, 12개의 군에 드리운 섬진강은 농익어 살이 쪘다.

봄이면 매화꽃이 피었을 자리에 오색 나무가 몸을 세웠다.

화엄사에 가까워진다는 걸 알았다.

운무가 낀 산의 능선이 제법이었고, 나무색의 명암이 짙어졌다.

우리가 간 게 아니라 지리산이 그렇게 왔다.

 

 

 

화엄사는 들어가기 전부터 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방문교(方文橋) 위아래로 펼쳐진 계곡과 숲의 절경 때문이다. 이 숲은 지리산 천왕봉 방향의 32.5km 산길로 유혹한다.

지리산 자락, 그 품에 안긴 사찰임을 뽐내듯 말이다. 화엄사는 백제 성황 22(55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방문교를 넘어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면 안주인인 대웅전(大雄殿)과 각황전(覺皇殿)이 있는 경내까지 연결된다.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계단으로 올라야 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그러하듯 화엄사도 대웅전보단 각황전에 시선이 쏠린다.

대웅전보다 좀 낮게 배치했음에도 국내 최대 규모를 감출 순 없었나 보다.

이 터에 있던 장육전(丈六殿)의 화엄경(華嚴經)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거로 알려졌다.

 

 

 

 

각황전은 겉만 봐도 목조 기와집의 웅장함과 단정함을 집약했는데, 안이 더 멋스럽다.

통기둥으로 지탱하며 층을 없앴다. 우물 정()자로 된 천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각황전 앞 석등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이나 섬세한 조각에 마음이 뺏긴다.

예불을 준비하는 외국인 승려가 바쁜 걸음이었다.

대웅전 뒤로 봉긋하게 솟은 지리산의 절개가 흘렀다.

크지만 겸손하고, 깊은 속을 지닐 것.

이 화엄사에서 배웠다.

 

문의 061-783-7600, www.hwaeomsa.com

 

<2부에서 계속...>

 

<LG이노텍 사보 "소통공감" 11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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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긍지 '한글' 올바르게 사용합시다!

재미가 톡톡! 2016.10.25 12:30

 

 

 

우리 민족의 언어, 
한글

 

 

 

 

 

0월 9일은 한글날!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겨있는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우리가 공기의 중요성을 평소 잊고 살듯, 언어나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는 한글이지만,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죠.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 민족은 한자 바탕의 문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중국어가 기본인 한자와 한문으로 우리말을 모두 표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말과는 별도로 한자와 한문을 배워야만 했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백성들은 따로 시간을 내 한자와 한문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죠.
  
당시 사대사상에 젖은 일부 관리들도 불편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한글 창제를 달가워하지 않았는데요, 특히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관련한 연구를 은밀하게 진행했으며, 결국 1446년 9월, 세종이 즉위한 지 28년이 되던 해에 훈민정음은 반포됩니다.
 
미국의 어느 언어학자는 10월 9일 한글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만들어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연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한글날이 자신의 생일 만큼이나 중요한 잔칫날이 되는 셈이죠. 이렇게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토록 소중하고 위대한 한글인데, 우리는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올바른 한글 사용법을 알아봅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헷갈릴 때마다 부지런히 되풀이해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죠.
이제는 자랑스러운 우리말 한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민족의 소중한 긍지를 잇는 우리말 지킴이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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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 여행 코스를 추천해 드려요!

재미가 톡톡! 2016.10.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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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 고르는 법, 이것만 꼭 확인하자!

재미가 톡톡! 2016.09.22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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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231254 2016.09.26 1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욯

미국 남동부 여행팁을 알려드립니다!

재미가 톡톡! 2016.09.1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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