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고개 극뽀~옥! 직장인 월급관리 노하우

재미가 톡톡! 2016.12.07 18:00

 


설문을 통해 LG이노텍 임직원의 생각을 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고자 마련된 ‘이노라이프’!
이번에는 월급과 관련해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설문결과와 함께 월급 관리 노하우를 알아봅시다.
 
 
 

당신의 월급은 안녕한가요?
 
 

매월 25일이 되면 통장에 입급되는 월급, 하지만 슬프게도 월급이 통장에 머무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새내기 신입 사원은 물론, 연차가 쌓인 부장님도 예외는 아닙니다.
 

 

여러분의 월급은 안녕한가요? LG이노텍 사람들의 월급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합니다!
 
 
 

 

 

“월급아, 월급고개 탈출을 부탁해~!”
직장인의 월급관리, 이것부터 시작해보자!

 

 


 
스쳐 지나가는 월급을 영원히 잡아 둘 수는 없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오래 곁에 두는 방법!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실행 가능한 작은 비법을 모아보았습니다.
 
 
 
 

 

뚜렷한 인생 목표를 세우자
 
도달하고 싶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월급을 쪼개서라도

저축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도 없이 대충대충 사는 사람이라면,

왜 저축을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지출만 늘어날 수밖에 없죠.
 
 
 


  

월급고마움을 알자
 
월급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은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돈이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월급은 지금의 나와 가족을 지탱해 주는 힘이며, 앞으로 닥칠 여러 경제적인 문제를 풀어줄

금고이므로 월급에 대한 태도부터 바꿔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적금의 가치는 수익률 보다 완주에 있다
 
재테크의 가장 손쉬운 시작은 적금입니다. 하지만 월급고개를 맞이했을 때, 갑자기 큰돈이 필요할 때, 쉽게 깰 수 있다는 점이 함정이죠.
게다가 나날이 내려가는 금리 때문에 재테크 수단으로서 적금을 제외시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하세요! 사실 적금의 가치는 수익률이 아닌 완주에 있다는 사실을요.
 
높은 수익률에 치중하는 것보다 적은 금액이라도 끝까지 모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하나의 적금 통장에 처음부터 많은 돈을 납입하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하죠.

큰돈이 한꺼번에 묶여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니
기간을 짧게 잡고 적은 금액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여유 자금이 확보된다면 그때부터 금액을 늘리면 되니까요.
 
 



 
 


 푼돈 모으기의 매력에 빠지자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의 아기자기한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평소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직장인들.
하지만 적은 금액이라도 함부로 쓰다 보면 어느새 월급고개의 주범이 되기 쉽습니다.
 
자, 이제는 금방 사라지는 푼돈의 운명을 바꿔봅시다.

주머니 속 짤랑거리는 동전, 어제 과일 사고 거슬러 받은 3천 원.
적은 돈이라도 조금씩 저금통에 넣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죠.

어떤 물건을 할인받아 구매했다면, 할인받은 만큼의 금액을
통장에 저금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나만의 푼돈 절약 규칙을 만들어 실천한다면 성취감은 두 배가 되지 않을까요?
 
 
 


 

 


 새는 돈은 가계부로 막을 수 있다
 
하루하루 지출 명세만 꼼꼼히 적어도 지출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지출관리에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가계부를 쓰는 것입니다.

가계부를 통해 매일 일어나는 수입과 지출을 꼼꼼히 관리하면 새어나가는 돈을 막을 수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스마트폰 앱이 잘 나와 있으니 ‘가계부 앱’을 이용해도 좋을 것 같네요.
  
 



 


 연말정산, 1년 365일 준비하자
 
연말정산 준비만 잘해도 한 달 용돈뿐만 아니라 한 달 월급을 보너스로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연말정산에 소홀하면 자칫 세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죠.
 
주택청약 등 소득공제 상품을 이용해 저축하기, 현금영수증을 챙기기 등 지금부터 대비하도록 합시다.
1년 365일 연말정산을 대비한다면 연초 보너스도 기대해볼 만 하지 않을까요?
 
 
 


 

 협력자를 구하자
 
재테크는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닙니다. 부부 사이에 한쪽은 열심히 절약하는데,

나머지 한쪽은 흥청망청 쓰기만 한다면
아무리 많이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가족의 협력이 중요합니다.
주변에 재테크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협력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지금까지 ‘월급고개’를 주제로 한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월급고개 탈출 비법’을 알아보았습니다.
정해진 월급, 정해진 고정지출 내에서 또 다른 재테크를 시도한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장 큰돈을 모으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는 현재 안에서 소소한 저축의 재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월급고개와는 영원히 “안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모두 월급고개 걱정 없는 행복한 직장인이 되기를 바라며
‘이노라이프’, 여기서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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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산, 지리산 자락을 따라, 1박 2일 남도 여행 (2부)

재미가 톡톡! 2016.12.03 13:00

 

 

 

 

구례 화엄사~구례 사성암

 

 “만일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면, 어느 길이든 널 거기로 데려다줄 것이다.”

조지 해리슨(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애초에 무언가를 보러 떠난 여행은 아니었건만, 사성암만큼은 꼭 만나고 싶었다.

언젠가 사진으로 먼저 접한 사성암이었다.

사성암은 연기조사가 본사 화엄사를 창건한 뒤 건립한 사찰이다.

그 명칭은 이곳에서 수도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4명의 고승으로부터 유래했다.

절벽 위 아슬아슬하게 걸린 사찰. 그 절벽은 해발 530m 오산(鼇山)의 것이었다.

그가 내려다볼 시야에 우릴 데려다 놓고 싶었다.

  

 

실제 감상은 사진보다 더 크고 감격스럽다. 카메라란 얼마나 무기력한가.

사성암은 여느 사찰처럼 번듯한 마당이 없다.

법당으로 오르거나 올려다봐야 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오산에 기대거나 숨어 있다.

약사전(藥師殿)의 왼쪽 계단으로 소원바위에 올랐다.

지금의 사성암은소원이 이뤄지는 사찰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바위 앞 노랑 쪽지는 누구나 같은 소원이 적혔다.

그를 등지면, 차 안에서 본 근거리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묘하고 벅차다.

퍼즐처럼 조각난 풍경이 하나로 모였다.

섬진강의 물줄기가 열매를 맺은 구례읍과 곡성평야는 유난히 기름졌다.

그 마음, 그 광경을 너무 오래 품었나 보다.

낮의 실낱같던 빛이 밤의 조명에 성급히 자리를 넘겨주고 있었다.

마음이 이러한데, 어찌 당신의 소원이 이뤄지지 않을까.

문의 061-781-4544

 

 

 구례 사성암~함양 지안재

 

 

“인생은 늘 완벽하지 않다. 마치 길처럼 여러 굽이가 있고 오르락내리락 기복이 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아름다움이다.”

– 아미트 레이(인도 작가)


 

함양에서 눈을 떴다. 지리산 노고단 근방에서 숙박할까도 생각했지만

법화산과 삼정산, 창암산의 삼각지대인 함양의 마천면에 짐을 풀었다.

1023번 국도가 지나는 길이다.

담양 소쇄원을 우선한 나머지, 계획대로라면 구례에 있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다시 넘어가야 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러나 좀 둘러가면 어떠랴. 고작 10여 개의 가구가 한 마을을 이루는 산골 풍경은 

수묵담채화였다. 관광버스도, 대중음식점도 없다.

샛노란 다랑논 사이로 아궁이에 땐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도재 휴게소는 1023번 국도에서 가장 높이 있다.

해발 773m에서 지리산의 11개 봉우리를 조망할 명당을 내어주지만, 안개가 끼면

장사 없다. 그 날의 풍경은 무시무시한 백지상태였다. 이 길에서 함양읍으로 내려가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에 선정된 지안재가 있다. 능구렁이가 아스팔트가 되어

마천면 구양리와 함양읍 구룡리를 잇는다. 6번의 급커브는 힘 좋은 SUV도 낑낑댄다.

옛적 내륙 사람은 이 고개를 넘어 남해 사람과 물물 교환을 하는 장터목에 갔다.

국도의 길 이름은지리산 가는 길이다. 드디어 지리산으로, 핸들을 꺾었다.

 



지안재~지리산 노고단(성삼재 휴게소)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돌아오기 위해서도 존재하는 것이다.” – 이외수

 

 

 

 

오도재로부터 노고단으로 가는 길은 3단계다. 천왕봉로와 지리산로, 그리고 노고단로다.

이 길의 특징은 갓길도 아닌 도로에 주차된 차들 때문에 정체란 점이다

불법주차 금지란 경고문도 무용지물이었다.

그만큼 예쁘다. 가을 나무들이 기뻐서 소리치고 있다

창문을 내렸다. 가을 냉기와 냄새가 서둘러 달려왔다.

노고단로는 찌그러진 S자로 구불구불 차가 닿을 수 있는 최전방인 

성삼재 휴게소까지 이어졌다.


노고단은 지리산으로 오르는 가장만만한목적지다.


휴게소에서 2.8km 거리, 게으름을 피워도 왕복 3시간이면 된다.

1967년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

이 만만한 산은 벌목과 쓰레기로 할퀴고 짓밟혔다. 이후 지리산은

1991년부터 2001년까지 10년간 안식년을 맞았다.

그 후 둥근이질풀과 산오이풀 등 아리따운 식물도 쑥쑥 컸다.

어찌 된 영문인지, 그날의 지리산은 아무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사람조차 안개에 가려져 하반신만 둥둥 떠다니고, 카메라 속엔

나무와 안개의 흑백 사진뿐이었다. 그리고 산은 역시 산이었다.

아직은 오색 가을에 맞지 않는 매서운 겨울 날씨였다. ‘구름 속의

산행’ 외엔 별다른 말이 필요 없던 길, 수십 번 되돌아가려는데

걸음이 앞서던 길. 누군가 지리산은 멈출 수 없는 산이라 했다.

 


참 힘없이 나무 데크를 올랐다. 어떤 끌림으로 노고단 고개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그런데 정상에 가까워질 즈음이다.

순식간에 하늘이 열렸다. 몽환인가. 구름이 슬슬 물러나는 것 같더니,

빛이 구름을 찢고 나왔다. 발아래 풍경은 보일락말락 숨바꼭질을 했다.

운무에서 모습을 드러낼 때면, 숲은 울긋불긋 물들어 있었다.

고되게 오른 딸과 아들을 품는 것인가. 누군가 지리산은 어미의 산이라고도 했다.

  

하산하는 늦은 오후, 여전히 오르는 이가 많았다

지리산에 부름을 받은 이들이다. 여행의 힘은 이런 게 아닐까.

비어내고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기분이 드는 일

그 힘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김용택 시인의 말처럼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으므로.


<LG이노텍 사보 "소통공감" 11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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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의 산, 지리산 자락을 따라, 1박 2일 남도 여행 (1부)

재미가 톡톡! 2016.11.30 18:00

 

바다를 끼지 않는 길에 대해 큰 기대는 없었다. 나무와 숲에 기대 장엄한 밀물의 감흥 따윈 없을 거란 결론이었다. 성급한 판단이었나. 담양과 구례, 함양으로 연결된 남도의 안쪽은 가을이 다리를 놓고, 겨울이 마중 오는 계절의 급물살이었다. 지리산이 포옹하는 드라이브. 참 포족했다.

 

~담양 소쇄원

  

“가야 할 가치가 있는 곳에 닿는 지름길은 없다.” – 비버리 실즈(미국 오페라 가수)

 

 

 

차는 엉뚱하게 담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적지는 소쇄원이다.

지리산 근방이라고 하기엔 80km도 족히 넘는 곳이었다.

언젠가 사는 게 안쓰럽다고 여길 때 찾았던 곳이다. 그해 여름의 소쇄원은 소리로 기억되었다.

광풍각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면,

대숲이 마음을 빗어 내리듯 청명하게 요동쳤다. 겨울의 문턱, 다시 소쇄원에 섰다.

  

 

소쇄원은 1530년경 은둔한 조선시대 선비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별서정원이다.

풀이하자면, ‘맑고 깨끗한 정원이다.

당대 가사 문학의 대가가 여기 모두 모였다. 정철, 송시열, 송순 등 풍류와 사유엔 일가견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들이 사랑한 건 지금도 있다.

대숲을 시작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등의 고목과 계곡을 눈 밑에 둔

제월당(霽月堂)과 광풍각(光風閣) 등 팔작지붕집까지.

세파에 높은 벽을 치는 자연 한가운데에서, 여행객은맑고 깨끗한자신과 마주한다.

늘 그랬듯 사랑채 같은 광풍각에는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제월당의 48(양산보의 사돈인 김인후의 시) 중 제44영인

‘골짜기에 비치는 단풍(映壑丹楓)’을 그렸을 것만 같은 자리다.

오색 고목이 눈동자를 물들이고, 바위 사이로 낙엽을 실은 계곡 소리에

대숲이 메아리친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 계절을 붙든 여러 이파리가 하늘에 수를 놓고 있다.

소쇄원의 가을은 계절이 변하는 소리를 눈으로 보여준다.

마음은 비워지고, 그 자리를 채울 여행에 나설 시간이 되었다.

  

개관 오전 9~오후 7     문의 061-382-1071, www.soswaewon.co.kr

 

 


 

 

 담양 소쇄원~구례 화엄

 

 “삶은 아름답지 않은가. 당신이 어딘가로 가는 길 위에 있다면.” – 오르한 파묵(터키의 작가)

 

 

 

화엄사로 가는 길, 내비게이션은 섬진강에 편향되게 맞췄다.

호남고속도로로부터 곡성으로 진입해 17번 국도를 따라 섬진강 물줄기가 안배하는 길이다.

3개의 도, 12개의 군에 드리운 섬진강은 농익어 살이 쪘다.

봄이면 매화꽃이 피었을 자리에 오색 나무가 몸을 세웠다.

화엄사에 가까워진다는 걸 알았다.

운무가 낀 산의 능선이 제법이었고, 나무색의 명암이 짙어졌다.

우리가 간 게 아니라 지리산이 그렇게 왔다.

 

 

 

화엄사는 들어가기 전부터 걸음에 제동을 걸었다. 방문교(方文橋) 위아래로 펼쳐진 계곡과 숲의 절경 때문이다. 이 숲은 지리산 천왕봉 방향의 32.5km 산길로 유혹한다.

지리산 자락, 그 품에 안긴 사찰임을 뽐내듯 말이다. 화엄사는 백제 성황 22(554)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방문교를 넘어 일주문(一柱門)을 통과하면 안주인인 대웅전(大雄殿)과 각황전(覺皇殿)이 있는 경내까지 연결된다.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계단으로 올라야 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그러하듯 화엄사도 대웅전보단 각황전에 시선이 쏠린다.

대웅전보다 좀 낮게 배치했음에도 국내 최대 규모를 감출 순 없었나 보다.

이 터에 있던 장육전(丈六殿)의 화엄경(華嚴經)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거로 알려졌다.

 

 

 

 

각황전은 겉만 봐도 목조 기와집의 웅장함과 단정함을 집약했는데, 안이 더 멋스럽다.

통기둥으로 지탱하며 층을 없앴다. 우물 정()자로 된 천장의 아름다움에 반해 뒷목이 뻐근해질 정도다.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각황전 앞 석등 역시 국내 최대 규모이나 섬세한 조각에 마음이 뺏긴다.

예불을 준비하는 외국인 승려가 바쁜 걸음이었다.

대웅전 뒤로 봉긋하게 솟은 지리산의 절개가 흘렀다.

크지만 겸손하고, 깊은 속을 지닐 것.

이 화엄사에서 배웠다.

 

문의 061-783-7600, www.hwaeomsa.com

 

<2부에서 계속...>

 

<LG이노텍 사보 "소통공감" 11월호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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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긍지 '한글' 올바르게 사용합시다!

재미가 톡톡! 2016.10.25 12:30

 

 

 

우리 민족의 언어, 
한글

 

 

 

 

 

0월 9일은 한글날! 한글을 창제해서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겨있는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우리가 공기의 중요성을 평소 잊고 살듯, 언어나 문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생활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어있는 한글이지만,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죠.
 
한글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 민족은 한자 바탕의 문자 생활을 했기 때문에 불편함을 많이 겪었다고 합니다. 중국어가 기본인 한자와 한문으로 우리말을 모두 표기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데요,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서는 말과는 별도로 한자와 한문을 배워야만 했고,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백성들은 따로 시간을 내 한자와 한문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죠.
  
당시 사대사상에 젖은 일부 관리들도 불편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권력을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한글 창제를 달가워하지 않았는데요, 특히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새 문자를 만드는 것은 오랑캐나 하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와 관련한 연구를 은밀하게 진행했으며, 결국 1446년 9월, 세종이 즉위한 지 28년이 되던 해에 훈민정음은 반포됩니다.
 
미국의 어느 언어학자는 10월 9일 한글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문자가 만들어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자기 집에서 파티를 연다고 합니다. 그에게는 한글날이 자신의 생일 만큼이나 중요한 잔칫날이 되는 셈이죠. 이렇게 한글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토록 소중하고 위대한 한글인데, 우리는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고 있을까요? 지금부터 올바른 한글 사용법을 알아봅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헷갈릴 때마다 부지런히 되풀이해서 찾아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죠.
이제는 자랑스러운 우리말 한글에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합시다.
우리 모두 민족의 소중한 긍지를 잇는 우리말 지킴이가 될 수 있도록 말이죠! ^^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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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항구도시, 시드니 여행 코스를 추천해 드려요!

재미가 톡톡! 2016.10.21 10:00

 

Posted by LG Innot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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